This Is My Travel stories. 뿡뺭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41)
OVERSEAS (39)
DOMESTIC (2)
Total
Today
Yesterday

자다가 문득 눈을 떴는데 대흥사에서 종치는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새벽 네 시였다. 몇번이나 치나 하고 세어 보았는데 일곱까지 세다가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퉁퉁 부은 얼굴로 진짜 대~충 씻고 준비하고 있으려니 아침 식사가 준비되어 들어왔다.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원래 아침 식사가 나오기로 한 시각보다 조금 늦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남도답게 역시 맛있었다. 원래 가지는 기내식 아니면 안먹는데, 이날 아침 나온 가지무침은 양념이 맛있어서 많이 먹었다. 

밥을 먹고나서 나는 못 끝낸 준비를 하고 엄마는 혼자 커피타임을 가졌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소리치는 통에 나가보았더니, 여관 옆으로 계곡이 흘렀다. 밤새 쏴아 하는 소음이 들렸는데 아마 이 계곡물 흘러가는 소리였던 모양이다. 

계곡쪽에서 바라본 유선여관.

문화유산답사기 책에는 명물 누렁이와 그 후손들을 소개해두어서 혹시 만날 수 있을까 조금 기대했었는데,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여관 뒷편에서 줄에 매여있는 멍멍이를 보았다. 싫어하는 손님들이 많았던걸까, 아님 주인이 일부러 그런걸까 기분이 좀 슬퍼졌다.

"이 너부내를 뒤뜰로 하여 운치있는 한옥을 짓고 여관과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집이 유선여관이다. 강지에 살던 차씨 아저씨가 30년 전에 이 고가를 인수하여 운영해온 유선여관은 이번 철거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특전을 받았다. 지금도 장작불을 때는 전통한옥인지라 목욕탕·화장실이 불편하지만 그래도 구들장맛을 느껴볼 집은 여기만한 곳이 없는지라 나는 유선여관의 단골이 되었다."

조식은 미리 신청이 아니라 체크인 후 신청이라 체크아웃할때 따로 계산해야 한다. 체크아웃할때까지 돈을 언제줘야하나 혼자 끙끙대었다. 차라리 미리 신청을 받고 숙박비 입금할 때 같이 계산하면 좋을 텐데.

유선관 문을 나서서 산 입구쪽을 바라보면 이렇다. 산속이라 5월 초 아침은 꽤 쌀쌀했다. 

가로등이 있지만 이 길은 밤에는 꽤 무서웠다. 지난 밤 휴대폰 충전 케이블을 차 안에 두고와서 바로 옆에 주차해둔 차에 다녀오는데 아주 깜깜했다.

유선관을 나서서 아침일찍 대흥사로 향했다. 도보로는 5분도 채 안 걸린 것 같다.

"너부내 계곡을 타고 대흥사로 들어가는 십리 숲길은 해묵은 노목들이 하늘을 가리는 나무터널로 이어진다. 소나무·벚나무·단풍나무가 저마다 제멋으로 자라 연륜을 자랑하고 있으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모두 계절의 제 빛을 놓치지 않는다."

지나가던 길에 약수터에 나무아미타불~ 하고 씌여 있어서 사진을 찍었는데, 그 바람에 약수터인지 못 보고 지나쳤던 엄마가 기어이 약숫물을 한바가지 마셨다.

나는 물냄새에 예민한 편이라 약숫물 같은건 왠지 못 먹는다.

 

"대흥사의 가람배치는 아주 뛰어난 마스터플랜을 보여준다. 양쪽에서 흘러드는 계곡을 끌어안아 절집 전체를 4구역으로 나누고는 크게 남원과 북원으로 갈라놓았다. … 그리하여 각 당우를 낮은 돌담으로 둘러치고 그 사이사이 공간에는 해묵은 노목과 밝은 계곡 그리고 무염지가 자리잡게 하여 산사의 아늑함을 유지하면서도 대찰이 지니는 위용을 잃지 않았으니 그 공간의 경영이 자연을 거스름이 없으며 공간을 낭비한 것도 없다. 대흥사의 호방함과 안온함은 이렇게 이룩된 것이었다. 그런 대흥사의 이 멋진 가람배치가 무너져버린 것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성역화작업 때문이었다."

 

대흥사 대웅보전 앞길의 돌바닥은 연꽃이 조각되어 있었다. 

누가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코끼리 기와그림이 혼자 벽에 기대어져 있었다. 아마 솜씨좋은 누군가가 그린 이 그림을 그냥 두긴 아까워서 전시한 것 같았다.

여기 문틀은 참 특이하네 하고 사진을 찍어 두었다. 여기가 천불전인줄도 까맣게 모르고 한참을 천불전 꽃창살을 찾아 헤맸다.

 

천불전에는 스님이 천일기도를 하신다고 했다. 우리보다 앞서 천불전에서 사진을 찍던 커플이 소란스럽게 굴어서 스님이 기도하는데 저래도 되나 했는데, 나중에 옆문이 열려있어서 들여다보니 절 안에 아무도 없었다. 

대웅사는 터 자체가 굉장히 큰데 거기에 더해서 계속해서 신축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절은 고즈넉하고 옛모습 그대로를 간직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꼴통보수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는 규모를 키우고 있는 절의 모습이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대웅보전과 천불전까지만 들여다보고 다시 되돌아 나오면서 기념품가게를 구경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줄 기념품으로 연꽃빵을 한 상자 샀다. 절을 빠져나와 유선관 옆 슈퍼마켓에서 엄마는 해남 탁주를 한 병 샀다. 

화장실이랑 샤워실, 그리고 객실 청소 상태(이건 참을만 하다)만 빼면 유선관은 한번 더 묵어보고 싶은 곳이다.

차를 몰아 두륜산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젊은 꼰대인 나는 산에 케이블카를 마구 설치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걸어 올라가면 될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굳이 환경과 자연을 파괴하며 저런걸 설치해야 하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근데 근래 몇년들어 보행이 불편한 사람도 있음을 깨달으며 내 생각이 얼마나 식견이 짧고 이기적인 것이었는지 조금씩 깨닫고 있다.

케이블카는 30분에 한대씩 운행되고 있었고 우리는 9시 20분 정도에 케이블카를 탔던 것 같다.

케이블카를 타고서 딱히 볼 건 없다. 그러니 앞자리든 뒷자리든 혹은 가운데든 별로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10분 남짓 타고 올라가서 케이블카에서 내리면 다시 산책로를 조금 걸어 올라가야 한다.

보통 사람 걸음으로 5~10분 정도 걸으면 되는데, 산길이 아니라 데크를 깔끔하게 조성해 두어 걷는데 큰 불편함은 없을 것 같다. 

중간 중간 이렇게 '갬성' 글귀도 조각으로 전시해두었다. 인증샷을 찍기 좋을 것 같다.

꼭대기에 올라가면 넓은 광장이 있는데 사방이 탁 트여 360도로 조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불어 꽤 추웠다.

위에서 보니 서북쪽 방향에 뿌연 미세먼지층이 한눈에 들어왔다. 위쪽은 저렇게 맑은데 아래쪽 우리는 저 뿌연 대기밑에서 생활을 하고 있구나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꼭대기에서 내려와 다시 케이블카를 타러 줄을 섰다. 내려가는 편은 줄이 꽤 길어 이번 케이블카를 탈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기다리던 사람 전부 다 탈 수 있었다. 

케이블카 정원은 51명이었던걸로 기억한다.

마지막으로 윤고산 고택으로 향했다. 윤선도 유적지라고 표지판에 크게 쓰여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케이블카 빼고) 입장료를 냈던 것 같다.

성인은 1인당 2,000원. 티켓을 구매하는데 매표원이 친절하게 녹우당 안은 들어갈 수 없고 주변만 관람이 가능하다. 전시실에 가면 해설사가 있으니 안내를 요청하면 유물 전시 해설을 들을 수 있을거라고 안내해주었다.

녹우당 앞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다. 수령은 500년 이상으로 짐작하고 있다고 하는데, 자손의 장원급제를 기념하며 식수하였던 은행나무라고 한다. 

이 단풍나무는 벌써부터 빨갰다. 원래 잎이 붉은 나무인걸까?

"그 당호를 녹우당이라고 한 것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뒷산의 비자나무가 한줄기 바람에 스치면 우수수 봄비 내리는 소리처럼 들렸다고 해서 붙인 것이다."

표지판을 보면 지금은 들어갈 수 없는 장소들이 이전에는 개방이 되었었나 싶은 느낌을 주었다. 내가 갔을 때에는 안채뿐만 아니라 녹우당 전체에 출입을 할 수가 없었다. 

대신 그냥 돌담길을 따라 한바퀴 쭉 돌았다.

녹우당 뒷편 사당 옆쪽에도 무지하게 큰 소나무가 있었는데, 뒷쪽 비자림이 조성될 때 같이 심은 것 같다고 표지판에 씌여 있었다. 

비자림에 들어가다가 꽃가루가 눈에 보이게 날아다니는 통에 다시 되돌아 나왔다. 

나오는 길에 마주친 유치원생 딸이 둘 있는 가족이 있었는데, 큰 애가 구두에 튜튜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쟤는 분명히 자기가 옷 골라 입은 거라고 확신했다. 활동하기 불편한 옷을 애들 엄마가 입혔을 리가 없다고. 그러면서 엄마는 우리를 키우면서 우리 옷을 엄마가 다 골라줬던 게 좋은것은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너네들한테도 선택권를 줬어야 했는데. 그래야 자립심이 생기지. 

녹우당 뒷편 건물은 유지보수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잘 보이진 않지만 그 건물 앞에는 작은 녹차밭이 있어 찻잎을 따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녹우당 왼편에는 카페가 있었다. 반듯하게 잘 지어놓은 한옥 카페일 줄 알았는데 그냥 아주 작은 카페였다.

녹우당 입구에서부터 카페 표지판이 있었는데, 위치 설명이 참 마음에 들었다; 은행나무에서 오른쪽.

우리는 오미자에이드를 한잔 사 마셨다. 테이블에 앉으니 일단 강냉이 뻥튀기를 한그릇 주신다. 옆 테이블과 이야기하는 걸 들어보니 직접 만드셨다고 했다. 에이드를 만들 오미자청도 직접 담궜다고 하셨다.

유물전시관은 녹우당 앞편에 위치해있어서 우리는 유물전시관의 뒷편으로 들어갔다. 2층에 있는 그네를 조금 타다가 앞쪽으로 돌아 나가 전시관의 입구로 들어갔다. 들어가니 해설사에게 전시해설을 들었는지 고맙다고 한 팀이 떠나가고 있어 우리도 유물 해설을 요청했다. 

기대와는 달리 전시실을 다니면서 설명해주진 않았고 그냥 그 자리에서 대략적인 녹우당의 역사와 윤고산 및 윤공재에 대한 소개를 해 주셨다. 안내 내용은 벌써 내 머릿속에선 휘발되어 사라져버리고, 녹우당의 명칭에 대한 안내만 기억하고 있다.

책에서 읽은거와는 다른 내용이었는데, 봄비를 '녹우'라고 하며 녹우가 내리고 나면 산천초목이 자란다. 이 녹우처럼 자손들이 사회에 이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녹우당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 3분정도 설명을 듣고 있으니 단체 손님들이 와르르 몰려왔다. 원래 해설 예약이 되어있는 분들이신 것 같았다. 

전시실로 내려오니 제일 먼저 스템프 체험이 있었다. 엄마는 한치의 주저함도 없이 스템프 테이블에서 주섬주섬 스템프를 찍기 시작했다.

스템프는 총 세 종류 있었고 모두 공재 윤두서 작품인듯 했다.

전시관에는 해남 윤씨 집안에 대한 설명과 유물들, 윤선도의 시, 그리고 윤두서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곳에 가기까지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배운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하는 어부사시사가 윤선도의 시였는지 몰랐고, 국사책에서 본 수염이 가득한 옛날 사람의 자화상이 이곳에 있는 줄 알지 못했다. 

"녹우당이 녹우당으로 우리를 여기까지 부른 것은 윤고산, 윤공재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들이 남긴 예술적·문화적 위업은 지금 녹우당 앞 양옆의 유물관리실과 유물전시실에서 살필 수 있으니 거기로 가면 된다."

문화유산답사기 책에서 글쓴이는 유물의 보존상태를 아쉬워하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아마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지 않을까. 이 유물들은 해남에 있어서 더욱 가치롭다는 생각을 했다.

유물전시관을 마지막으로 강진-해남 여행은 끝이 났다.

집으로 오는 길에 해남 피낭시에에 들러 '고구마빵'을 살까 했는데 카카오맵으로 보니 매주 월요일은 휴무일이라 그냥 집으로 돌아오는 편을 택했다. 사실 해남읍과 고속도로의 갈림길에서 고속도로길을 택해 달리고 있던 중이어서 되돌아가기도 좀 그랬기도 했다.

휴게소에서 라면과 간단한 점심을 먹고, 5월 7일부터 유류세 할인률이 줄어든다고 해 부랴부랴 차에 기름을 만땅으로 채우고 귀가했다.

다음 여행은 어디가 좋을까. 근데 벌써 한 달이 지났는데 문화유산답사기 책을 한번도 펼쳐보질 않았다.

Posted by 뿡뺭
, |